시(詩)

정영선, 틈

kimbook 2007. 10. 3. 22:43

 

정영선

 

너와 나의

오랜 대치를 면으로 이으면

이 강둑의 경사진 옹벽쯤 될 거라

강물이 이랑져 와 �버덕 치는 소리에

나는 슬쩍 틈을 열고 싶네 아니 열렬히

초저녁 까마득 찾아온 별빛이

비집도록 금을 내고 싶네 온몸 다해

어느 봄 들른 홀씨에 자리 내주고

망초가 이사오면

갈대 식구가 옮겨오고

풀숲 무성케 하고 싶네

미친 여자 풀어헤친 가슴처럼

 

보름달 환히 귀 쓰다듬어도, 너는

네 속의 신음으로 넘쳐

홀씨 하나 오래 두드리다 돌아가고

여뀌 하나 뿌리 못 내린

깨끗하게 씻어 엎어놓은 사기그릇

돌 자궁

모든 전언을 금한 콘크리트 벽이네

 

상처가 울창해서

문 닫은 사람아

나 오늘 바람의 여울 불러 네게로 가니

네 가슴 흠집 열어

내 말의 풀씨를 소리 없이 눕게 하라

 

---정영선, 콩에서 콩나물까지의 거리, 랜덤시선024, 랜덤하우스(2007년 3월 31일)---

 

*나도 '상처가 울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