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신지혜, 밑줄

kimbook 2007. 11. 18. 14:19

밑줄

 

신지혜

 

바지랑대 높이

굵은 밑줄 한 줄 그렸습니다

얹힌 게 아무것도 없는 밑줄이 저 혼자 춤춥니다

 

이따금씩 휘휘 구름의 말씀뿐인데,

우르르 천둥 번개 호통뿐인데,

웬걸?

소중한 말씀은 다 어딜 가고

 

밑줄만 달랑 남아

본시부터 비어 있는 말씀이 진짜라는 말씀,

 

조용하고 엄숙한 말씀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지요

 

잘 삭힌 고요,

 

空의 말씀이 형용할 수 없이 깊어,

밑줄 가늘게 한 번 더 파르르 빛납니다

 

---신지혜, 밑줄, 시작시인선0085, 천년의시작(2007년 9월 30일 3쇄)---

 

*'밑줄'을 지웠다.

  흔적도 없이 지웠다.

 

  '잘 삭힌 고요'도 남아 있지 않다.

  '본시부터 비어 있는 말씀'도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