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김이듬, 별 모양의 얼룩
kimbook
2007. 12. 14. 23:13
별 모양의 얼룩
김이듬
베란다다 이불을 털다 소녀가 떨어진다 무거운 수염들과 단
단한 골격의 냄새가 묻은 이불을 털다 한 여자가 떨어져버린
저녁, 피가 번지는 잿빛 구름 속으로 타조 한 마리 날아가는 지
방 뉴스가 방영되고 기차를 타고 가던 그들도 앞부분이 무거
운 문장의 자막을 잃게 될 것이다
순식간이다 얼룩이 큰일이다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추위는
시작된다 냄새 나고 화끈거린다 두근두근 한다 몰래 홑청을
바꾸고 펴놓았다 개킨다 올리다가 다시 내린다 이불 속 깃털
을 뽑는다 큰 타조의 날개는 사라지고 발간 민머리 누더기, 이
상한 얼룩이 묻은 이불은 논리가 없다 귀찮아 걷어찼다가 다
시 껴안는다 제대로 꿰매지지 않는 기억은 비벼댈수록 스며들
고 씻을수록 번져간다 어느새 늙고 추악한 소녀를 돌돌 말고
있다
천상에서 이불을 털고 있나 검은 구름을 뚫고 희뿌연 깃털
들이 뽑혀져나오는 저녁, 자살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들이 집을
떠날 때 나는 거울을 보며 마구 머리칼을 자르고 있었다 첫눈
내리던 밤이었고 넓고 푹신푹신한 이불이 베란다 아래 펼쳐져
있었다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고 난 눈을 뜬다 의사만 조금 웃
는다 태어나던 순간에도 이랬을 것이다.
---김이듬, 별 모양의 얼룩, 시작시인선0054, 천년의시작(2005년 8월 5일)---
*나에게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별 모양의 커다란 상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