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권혁웅, 저 일몰

kimbook 2008. 1. 6. 22:56

 

저 일몰

 

권혁웅

 

그대 마음이 만만(滿滿)했다고

내가 거둬 낸 건 거품일 뿐이라고

터진 미더덕에 덴 혀로

더듬거리는 저녁이 내게도 있었지

저 일몰 어디쯤

내가 앉기를 거절한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을지 몰라

그래서 온통 붉었던 건지도 몰라

레인지에 올려 둔 해물탕처럼 딱 한 번

끓어 넘치고는

굳기름처럼 어두워졌을지 몰라

입가에 묻은 술기를 닦아 내며

먼 곳의 취기거나

수위를 가늠하는 시간, 나도

미역처럼 머리를 푼 여자와

못생긴 아이 하나쯤은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풀죽은 미나리가 동서(東西)를 모르듯

여기까지 오려고 온 것은 아니라고

 

---권혁웅,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민음의 시 141, 민음사(2007년 10월 5일)---

 

*"저 일몰"을 바라보던 날은,

 '떨어져' 죽기보다,

 '얼어' 죽기가 아무래도 빠를 것 같던 날이다.

 

 정상에서

 전화를 받으며,

 "저 일몰"을

 끝까지 보리라 다짐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