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정해종, 냉장고, 버려진

kimbook 2008. 3. 10. 22:43

냉장고, 버려진

 

정해종

 

서늘한 정신과 공복의 가슴

참 많은 것들을 품고 싶었는데

사랑이니 희망이니 그런 것들

오래오래 품고 싶었는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지 못하는 당신들, 당신들이

우겨 넣은 고기 덩어리와 깡통 맥주,

먹다 남긴 생선 부스러기와

썩어 가는 파뿌리

이 허섭스레기 같은 나날들을

견딘다는 게 정말 치욕스러웠다

 

무언가 품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내 生이 용도폐기 되는 날

아무도 모르게 공터에 버려졌다

벌겋게 녹을 뒤집어쓰고 누워

서서히 빠져 나가는 나의 영혼

아르곤 가스를 보았다

안녕, 푸른 하늘이여---

그렇게 조용히 눈감고 싶었는데

구청직원이 달려 나오고

환경단체 감시원이 뛰어나와

쓰레기 종량제를

오존층 파괴를 들먹이며

덜렁거리는 문짝을 걷어찼고

지나가던 똥개 한 마리가

태연스레 일을 보고 갔고

썩어가는 몸 속, 열린 두개골 속으로

오후 내내 파리만 들끓었다

사랑이니 희망이니 그런 것들

오래오래 품고 싶었는데

 

---정해종,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현대시세계 시인선 004, 북인(2007년 7월 20일)---

*이 시집은 고려원(1996년 3월 1일)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버려진,

 냉장고, 같으다.

 나.

 

*

 ---63쪽, 詩, '조롱받는 열반' 6聯 5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