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이근화, 아이스링크
kimbook
2008. 4. 2. 23:34
아이스링크
이근화
코치의 휘슬에 맞추어 아이들이
포즈를 바꾸었다 아스팔트 바닥을
박차고 미끄러져 나갈 듯하지만
아이스링크 앞마당의 나무와 자동차는
견고한 것이다 아이들의 손과 발은
허공을 가르고 구름을 찌르지만
앞마당의 그늘은 좀처럼
자리를 바꾸지 않고 아이들의
땀방울은 이마로 목으로
흘러내린다 휘슬이 길어지면
아이들의 작은 엉덩이가
더욱 기우뚱거린다
아스팔트 위에서는 넘어질 수 없다는 듯
날 수 없다면 크게 울어 버릴 듯
아이들은 검은 바닥을 차고
검은 물을 튕긴다
나무의 뿌리가 땅속으로 발을 뻗고
흙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듯이
바퀴가 바퀴의 언어를 키우듯이
아이들은 지금 뜨거운 앞마당에
발을 뻗는다 저마다의 속도와 이야기를
뽐내는 것들 속에는 까치와
까치에게 내장을 뜯긴 비닐봉지가 있다
얼굴을 바꾸는 것은
구름이고 아이들은 구름을 향해
더 높이 엉덩이를 쳐든다
검은 아스팔트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이근화, 칸트의 동물원, 민음의 시 132, 민음사(2006년 9월 20일, 1판 2쇄)---
*'종달새의 비상' 같은 것,
어쩌면
'비닐봉지'의 자유,
사실은 척박한... '그늘'
'아이스링크'가 그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