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신경림, 아름다운 저 두 손
kimbook
2008. 7. 9. 11:59
아름다운 저 두 손
신경림
소녀의 속옷을 들치고
부두에서 검은 물건을 나르고
저 두 손이
뒷골목에서는 열병도 앓고
죽음과도 맞닥뜨리고
오랜 방황 뒤에는
아내를 얻어 아이를
낳고 기르고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나 이렇게 살았노라
높이 치켜들렸다가는
슬그머니 엉덩이 뒤에 가 숨는
저 두 손이
별이 뜨는 언덕에 꽃도 가꾸고
지상에 가득 나무를 심고
부끄러움을 심고
아름다움을 심고
부끄러운 저 두 손이
아름다운 저 두 손이
---신경림, 낙타, 창비시선 284, 창비(2008년 3월 25일 초판 3쇄)---
*
'소녀의 속옷을 들치'던
손은 아니지만,
'소붕알'도 씻고,
'오이고추'도 따던
어느 누님의 아름다운 손이다.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