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김성규, 꿀단지
kimbook
2009. 3. 14. 23:46
꿀단지
김성규
장마철 솟아오른 버섯처럼
농로에 누워 발을 벌린 두더지
눈이 부신 듯 작은 눈을 더욱 작게 뜨고
통통하게 살찐 몸을 누인 두더지
손바닥으로 햇볕을 밀어내며
주둥이 옆에 앞발을 모아놓은 두더지
나무뿌리와 굼벵이와 지렁이를 떠나
보리이삭을 만드는 바람의 냄새를 쫓아
눈에 흙이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흙을 파던 두더지
눈감아도 땅속을 훤히 읽고 있던 두더지
물구덩이에 빠진 사람처럼,
햇살이 눈동자를 찌르자
허우적거리다 트랙터에 눌렸을 두더지
불룩한 주머니 속에서 오물이 흘러나오듯
굶주림은 검은 가죽을 뚫고
창자와 뒤섞여 냄새를 풍긴다
두더지의 몸에 활짝 꽃을 피운다
웬 꿀단지야,
웅웅거리며 파리떼가 몰려오리라
꿀맛 나는 피를 허겁지겁 빨아먹을 파리떼
다시 뛰어가려고 다리를 떠는 두더지
---김성규, 너는 잘못 날아왔다, 창비시선 288, 창비(2008년 5월 30일)---
*꿀단지,
우리집에 두~~개나 있다.
내가 먹던,
아직도 먹고 있는,
꿀단지,
우리집에 두~~개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