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황동규, 11월의 벼랑
kimbook
2009. 6. 15. 22:25
11월의 벼랑
황동규
어디에고 달라붙어보지 못한 도깨비바늘 몇
바싹마른 꽃받침에 붙어 있다.
후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저도 모르게 주저앉을까봐
서로 붙들고 선 줄기들,
새파랗다 못해 하늘이 쨍 소리를 낸다.
한 발짝 앞은 바로 벼랑,
방금 한 사내가 한참 동안
철 지난 유령처럼 서있다 간 곳,
옆을 스치는 그의 얼굴
절망의 얼굴로 보지 않기로 한다.
11월의 뒷켠 어디선가 만나는 인간의 표정,
얼굴에 그냥 붙어 있는 표정,
절망조차 허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몸과 마음 어디엔가 제대로 한번 붙여보기도 전에
눈앞에서 땅이 바로 수직으로 꺼지기도 하는데.
---황동규, 겨울밤 0시 5분, 현대문학(2009년 3월 5일)---
*
'11월의 뒷켠'은 누구나 '벼랑'이다.
'몸과 마음'이 '수직'이었던 사람...
그 사람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