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박후기, 제석봉에서 이별하다

kimbook 2009. 11. 16. 23:00

제석봉 부근(2009년 6월 24일) 

 

제석봉에서 이별하다

 

박후기

 

산처럼

사랑도 오르는 일보다

내리막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죽은 나무들 사이로

당신이 떠난 후 깨닫는다

엎질러진 물처럼

사랑은 발아래 스며든다

땀 흘리며 묵묵히 오르던

늦가을 벽소령,

당신에게 건네던 물과

함께 쏟아진 마음을

다시 담을 수 없었다

물 한모금으로

더운 가슴 적시며,

무거운 짐 지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사랑했다

하지만, 좁은 외길

함께 걸을 수 없었다

어째서

모든 뒷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지는지

알 수 없었다

 

---박후기,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창비시선 305, 창비(2009년 8월 20일)---

 

*우리가

 산을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오사바사한 '그사람',

 혼자서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 옛날 '그사람'들도

 모두 '산'을 내려만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