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허만하, 시간의 상흔
kimbook
2013. 11. 27. 22:01
시간의 상흔
허만하
강은 시작과 끝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으로 균형을 잡
고 오체투지 땅 위에 엎드려 있다.
태어나자 중심을 떠나 변두리를 찾아 멀어져가는 은
빛 시간의 운명. 기억 이전의 망각처럼 시원을 생각해
내려 이따금 돌아눕는 물길 끝에서 지질학적 기억은 새
로운 지명에 부합하는 풍경을 드러낸다.
미세한 높낮이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는 섬세한 정신
이 지상에 있다. 지상에서 상처 입지 않는 참된 정신은
없다. 경사면에서 활력을 얻는 물의 체질. 강이 끝을 가
지지 않는 것은 움직임 자체가 자신의 끝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사라지기 이전의 이승의 기억을 자신의 육체
에 상흔처럼 새겨둔다. 사람들은 짙푸른 바다 물빛의
과묵한 부름에 호응하여 낡은 지도 위를 음악처럼 흐르
는 시간의 발자국을 강이라 부른다. 저물어가는 쓸쓸한
들길 한가운데서 불타오르는 눈송이처럼 치열한 정신
시간의 발자국.
---허만하,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문예중앙시선 027, 중앙북스(2013년 7월 25일)---
*쓸쓸하다.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