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이기철, 사랑은 백 년 뒤 저 나무에 박힌 썩지 않은 노래 하날 발견하는 일이라고
kimbook
2015. 3. 24. 20:09
사랑은 백 년 뒤 저 나무에 박힌 썩지 않은 노래 하날 발견하는 일이라고
이기철
그러므로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일은
푸른 잎으로 누추를 닦아내는 일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읽을 수 없는 내 금서의 안쪽에
비밀문서처럼 네 이름을 써두는 일
그 이름 위로 오늘 밤 별빛 혼자 그 글자를 밟고 가리라
내가 네이름을 읽을 때마다
세상의 온도가 조금씩 높아지리라
내 체온은 어떤 예절보다 어떤 도덕보다 더 따신 것임을 나는 믿는다
더디게 오는 마음 끝에, 행여
밥 굶지 마라 쉬어가며 일해라 아프지 마라 달래도 보는 파란 깃발을 달아놓고
어느 시에도 쓰이지 않은 새 말 한마디를
너에게 건네주고 싶은 이 작은 반짝임
네가 사는 세상 끝에 씨앗처럼 묻혀
네 숨소리 한결 연해진 귀로 들을 수 있으리라
쪼개면 벌레울음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열매처럼
그렇게 네 그림자 쓸어 담으며 살고 싶다고
그래, 내 사랑은 백 년 뒤 저 나무에 박힌
썩지 않은 노래 하날 발견하는 일이라고
노래 속에 박혀 정물이 되어버린
뜨거웠던 입술 하날 발견하는 일이라고
---이기철, 꽃들의 화장시간, 서정시학 시인선 091, 서정시학(2014년 4월 20일)---
*그래, 내 사랑도
백 년 뒤 저 나무에 박힌
썩지 않은 노래가 되리라.
그 노래를 화장한 꽃들이 합창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