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송진권, 소나기 지나가시고
kimbook
2023. 6. 23. 22:58
소나기 지나가시고
송진권
그렇지
마음도 이럴 때가 있어야 하는 거라
소나기 한줄금 지나가시고
삽 한자루 둘러메고 물꼬 보러 나가듯이
백로 듬성듬성 앉은 논에 나가 물꼬 트듯이
요렇게 툭 터놓을 때가 있어야 하는 거라
물꼬를 타놓아 개구리밥 섞여 흐르는 논물같이
아랫배미로 흘러야지
속에 켜켜이 쟁이고 살다보면
자꾸 벌레나 끼고 썩기나 하지
툭 타놓아서 보기 좋고 물소리도 듣기 좋게
윗배미 지나 아랫배미로
논물이 흘러 내려가듯이
요렇게 툭 타놓을 때도 있어야 하는 거라
---송진권, 원근법 배우는 시간, 창비시선 483, 창비(초판 1쇄, 2022년 10월 24일)---
*"벌레나 끼고 썩기나 하"는 날들이
물꼬 튼 논물 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