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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문정희, 술 취한 친구

by kimbook 2007. 7. 19.

술 취한 친구

문정희


한마디로 우리는 깊은 관계이다
이렇게 먼 곳까지 함께 오다니
이제 전화 음성만으로도
그가 소주를 몇 잔 째 들이켰는지 훤히 안다
한 시절, 독재자가
한강 모래 위에 심어놓은 포플러처럼
우격다짐으로 입혀놓은 제복 속에서
함께 흔들리며 시를 썼다
겁도 없이 미래를 시에다 걸었으니
청춘은 불치의 내상을 입을 수밖에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우리는 아직도 시를 쓰고 있다

상처 많은 뿌리로
모래 위에 시를 쓰고 있다
오늘 또 술에 취해 그가 소리친다
야, 한 코 주라
죽는 날까지, 한 코 달라고 조르는 척하며
어느새 이 멀고 깊은 곳까지 들어와버렸다
어찌 할까, 더 늦기 전에
이번엔 내가 먼저 한 코 달라고 덤벼든다면
혼비백산 도망치고 말겠지
그러나 그게 또 무슨 상관이랴
우리는 이미 밖으로 나가는
길을 잃어버렸으니

---한국문학, 2003년 가을호(251호), 한국문학사---

 

*부끄럽다.

 술 취해 소리친 것이 이 말 뿐이랴.

 

 길을 잃은 지도

 너무 오래다.

 

 아직도 나는 詩를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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