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깜빡했어요
깜빡했어요 김기택 저런 저런,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하마터면 큰 실수할 뻔했네요. 제가 요즘 이렇다니까요. 도대체 뭘 하고 사는 건지. 그것도 모르고 있는 사이에 어어, 냄비가 넘치고 있어요, 아니, 그 사람이 제멋대로 넘쳐, 탁자 바닥이, 잠깐만, 넘치는 물부터 잠글게요. 미안해요, 통화하느라 깜빡했어요 물이 넘치는데도 정수기가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전 이런 일이 터질 걸 다 알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그랬잖아요, 그 사람이, 잠깐만요, 지금 마룻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어요. 이건 저만 알고 아직 아무도 모르는 얘기인데요, 절대로 냄비 밖으로 새 나가면 안 돼요. 안 보이는 구석이나 틈으로 흘러 들어가면 곰팡이나 바퀴벌레나 날벌레에게 퍼질 수도 있어요. 이건 당신한테만 ..
2023. 6. 24.
이봉환, 엄마가 날 부르신다
엄마가 날 부르신다 이봉환 아이야아이야, 엄마는 요새 자꾸 누군가를 부르신다 어 릴 적의 날 부르시는 겐지 그냥 아무에게나 칭얼대시는 겐 지 무언가가 슬쩍 스치기라도 하면 아야아야, 하고 앓으 신다 똥을 주무르고 주사기도 빼버린다는 전화가 온다 담당 의사 말조차 안 들어서 어찌할 수가 없으니 두 손을 좀 묶 어두면 안 되겠냐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가 엄마 손을 붙잡고 허둥대는데 아이야, 아이야, 느그 집에 가면 안 되겠냐는 엄마의 눈빛 ---이봉환, 응강, 반걸음 시인선 5, 반걸음(초판 2쇄, 2020년 3월 13일)--- *얼마전 치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친구가 있다. 그 친구, 매일 밤 운다.
2022.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