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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문충성, 낮잠 자는 할머니

by kimbook 2007. 10. 4.

낮잠 자는 할머니

 

문충성

 

돈 잘 버는 병원

길가에

참외

자두

수박

콩잎 한 묶음 팔리지 않는 상판 벌여놓았지만

섭씨 30도 오르내리는 7월 한낮

지나다니는 사람들 거들떠보지 않으니

무더위 속 주름살 접고

낮잠 잔다 자그만 할머니

70평생 말 잊고

깊은 침묵 이뤄

나비잠 잔다

한평생 걸러온 길

헌 슬리퍼도 저만치 벗어놓고

겨우

구겨진 삶 한 자락 또올똘 말아 베고

두어 뼘 쪼그리고 누워

가난한 낮잠 잔다

팔 차선 온갖 잡동사니 자동차들만 빵빵

누더기 삶 속

달려오고

달려가고

할머니 잠 속엔 천국이라도 펼쳐지는가

침 흘리는 입가에 아련히 떠 있는

아, 구겨진 미소

한 송이!

 

---문충성, 백 년 동안 내리는 눈, 문학과지성 시인선 328, 문학과지성(2007년 1월 19일)---

 

*눈에 익다.

 

 우리동네,

 커다란 공사장 옆 담벼락에도,

 은행 앞 전봇대에도,

 공중전화부스 옆에도...

 

 우리동네 사거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과적 리어카'가

 버스와 마주보고 '달릴 때'도 있다.

 이날 밤에는

 '나비잠' 드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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