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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김경주, 외계(外界)

by kimbook 2007. 10. 31.

외계(外界)

 

김경주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문예중앙시선 16, 랜덤하우스(2007년 4월 5일, 초판 5쇄)---

 

*한때는 나도 그랬다.

 

--- 그리고 몇 번인가 내 자연(自然)이 어머니 앞에서 무너졌다

    불구자처럼 나자마자 시작되는 생의 후유증이라니, 생이

    나를 가지고 자꾸 딴 생각을 한다(인형증후군 中)---

 

 지금은 내가 생을 가지고 딴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생의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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