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가면 들을 수 있을까
이진명
거기에 가면 들을 수 있을까
밤이 와서 밤이 된 나무와
또 하나 밤이 와서 밤이 된 나무가
조그맣게 밤의 흰빛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걸
밤의 흰빛이 실처럼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는 걸
거기에 가면 볼 수 있을까
밤이 와서 밤이 된 나무와
또 하나 밤이 와서 밤이 된 나무가
가만히 밤의 흰빛을 손에 걸기 시작하는 걸
밤의 흰빛이 발을 벗으며 저를 구부리기 시작하는 걸
---이진명, 세워진 사람, 창비시선 285, 창비(2008년 3월 20일)---
*하여간
밤나무 아래서
한 여자를 기다린 적이 있는데...
밤도 되고,
밤꽃도 피고 지고,
알밤이
내 발끝에 톡톡 떨어질 때까지
그 여자는 오지 않았던 것인데...
내 청춘도
그렇게 밤이 되었던 것인데...
그,
밤나무 아래 가면
잘 익은
내 청춘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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