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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이진명, 거기에 가면 들을 수 있을까

by kimbook 2008. 7. 18.

거기에 가면 들을 수 있을까

 

이진명

 

거기에 가면 들을 수 있을까

밤이 와서 밤이 된 나무와

또 하나 밤이 와서 밤이 된 나무가

조그맣게 밤의 흰빛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걸

밤의 흰빛이 실처럼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는 걸

 

거기에 가면 볼 수 있을까

밤이 와서 밤이 된 나무와

또 하나 밤이 와서 밤이 된 나무가

가만히 밤의 흰빛을 손에 걸기 시작하는 걸

밤의 흰빛이 발을 벗으며 저를 구부리기 시작하는 걸

 

---이진명, 세워진 사람, 창비시선 285, 창비(2008년 3월 20일)---

 

*하여간

 밤나무 아래서

 한 여자를 기다린 적이 있는데...

 

 밤도 되고,

 밤꽃도 피고 지고,

 알밤이

 내 발끝에 톡톡 떨어질 때까지

 그 여자는 오지 않았던 것인데...

 

 내 청춘도

 그렇게 밤이 되었던 것인데...

 

 그,

 밤나무 아래 가면

 잘 익은

 내 청춘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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