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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왈(曰曰)

산다는 것이 그저...

by kimbook 2009. 9. 20.

고향에 가는 것도 어렵다.

 

우리집안은 특수한 요일에, 이를테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제외하고, 伐草를 하러 간 적이 많다.

올해도 역시, 금요일에...

 

날씨도 죽이고,

송아지 한마리 잡아준다는 친구도 있으니,

생각만해도 첫날밤보다도 더 셀레는 것이었는데...

 

벌초도 가뿐하게 끝내고,

산삼이나 몇 뿌리 캐러 갈까,

아니면 올해는 엄청 비싸다는

새신랑 거시기 같은 송이나 왕창 따러 갈까,

고민도 가지가지였는데...

 

또, 우리집안 특성상

豊基 큰집으로 일단 후퇴,

소, 돼지, 소주, 맥주, 왕창 먹고, 마시고,

조카는 오늘 아침 셋째를 낳았다는데, 어쩌구,

올해 돌아가신 형님, 어쩌구,

너는 왜 장가를 안가니, 어쩌구 하다가...

 

이 친구, 저 친구,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전화를 넣고

내일(토요일) 만나자는 약조를 굳게 했었는데...

 

소,돼지를 싫어하시는 여든의 큰어머니를 모시고

풍기읍내 하나밖에 없다는 아무개횟집에서

(다음날 아침에 보니 풍기역 앞에 또다른 횟집이 있었다)

읍내 소주를 거의 다 마신 후에

반기절 상태에서

'아제'한테 '형' 어쩌구 하다가 잠들었는데...

 

새벽에,

수돗가에다 쉬를 보면서

흔들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우와, 별, 정말 크더라.

커다란 별이 내 머리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이쁜 자기들 모습같더라,라고 하면

안되는 건 아니겠지뭐.

 

다음날 아침(토요일)

풍기 人蔘市場에서 인삼차 여러 잔 얻어마시고,

어른들과 작별을 한 후,

풍기驛에서 남한다리까지, 牛市場까지, 왔다갔다하다가

(이때도 비몽사몽이었다는 걸 고백한다)

다시 돌아온 풍기역, 기차가 다니더라구.

아홉시 몇 분과 열두시에 청량리 가는 것도,

그 사이에 부전까지 가는 것도 있고,

살짝 미치더라구요.

 

기차를 타고 싶은 것과,

고르목재를 넘어가야하는 두가지 기분,

이 기분은 우리 동창들의 의견충돌과 비슷한게 아닐까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아주 사소한 하여간 미미한 그 무엇이었는데...

 

결정은 사소하게 정했지.

똥개 한마리가 역 광장 나무밑둥에 영역표시하며 다니더라구.

그래, 만약에

똥개가 역사(驛舍) 안으로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기차를 타고,

아니면, 고르목재를 넘겠다고 생각했지.

 

똥개도 나처럼 우왕좌왕 갈팡질팡 하더니

한골 먼저 넣은 한국축구처럼 시간끌기작전을 펼치다가 끝끝내

역사(驛舍)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지더군.

 

그런데 나는 왜 기차를 탔을까?

 

그래도 나도 사람인데, 똥개만도 못하랴, 하는

대단한 자부심, 아니면 자신감이랄까.

그런 기분으로 청량리 가는 기차를 탔지.

 

후회,

('오회'네 형도 아니고,

'후남'이네 언니도 아닌...)

너무 빨리 친해졌지.

 

살아오면서

개하고 똥다툰 적도 많았고,

그래서 사는 꼴도 요모양요꼴이고,

아, 풍기똥개님한테 한 수 배웠어야했는데...

 

역시, 똥개만도 못한 놈이 되고 말았습니다.

 

曰曰.

 

 *'오회'와 '후남'이는 제 친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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