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안개
이문숙
행려병자들이 모여 있는 서울시립병원 입구에 붙어 있
는 옛 표지판 이름은 갱생원이다 그곳이었을 것이다 그가
행방불명되었을 때 그곳의 안개는 포효, 안개는 희디흰 화
염, 원생들이 안개의 사슬을 끌고 산책을 한다 발목에는
안개의 쇠고랑
그곳으로 은닉되었을 것이다 만신창이 몸을 끌고 안개는
고문으로 얼룩진 그를 숨겨주었을 것이다 그곳의 안개는
말소, 자발적으로 생을 버린 자들이 안개의 사슬을 끌고
뜨거운 화염 속 발버둥도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확
실한 걸음으로 안개의 화상을 입고 안개의 소독을 받으며
안개, 희디흰 치유, 복사뼈에 구멍이 뚫리도록 안개, 희디
흰 행려
누렇게 띵띵 부은 복수 가득 찬 해가 안개를 싹 쓸어갈
때까지 직립을 거부하고 밤낮 누워 지내던 가느다란 다리
를 지어
절그렁 언제 걷힐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안개의 샤워 안개의 연주
---이문숙, 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 창비시선 309, 창비(2009년 12월 10일)---
*언제나 안개다.
五里霧中, 아니다.
百里霧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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