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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손택수, 살구나무 그림자가 바위를 미는 동안

by kimbook 2014. 12. 5.

살구나무 그림자가 바위를 미는 동안

 

손택수

 

구름이 산등성이를 밀고 지나갑니다

번지는 먹구름에 산이 안색을 바꿉니다

오늘은 기다리는 일로만 하루를 온전히 탕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마당에 비질을 하고, 맑게 갠 귀퉁이에

살구나무 그늘이 밑동의 바위를 미는 걸 지켜보렵니다

나무가 밀다 만 바위귀에 툭,

모래알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오후

술렁이는 그림자 따라 바위도 할 말이 많은 표정입니다

바위도 외로우면 금이 가고, 쩌억

저라도 쪼개 마주하고 싶은 것일까요

한때 저는 저 나무둥치에 그리운 이의 이름을 파 넣었지요

지금은 기억에도 없지만

지워지고 지워져서

한잎이 되고, 또 한잎이 되어 돋아나는 당신이 있습니다

이 오랜만의 기다림은 한눈을 잘 팔던 아이를 생각나게 합니다

저물녘 쿨럭이는 슬레이트 지붕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아이

제가 평생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녁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무엇을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림 속에 빠져 있던

그 외로운 아이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리는 일 하나만으로도 참 멀리 갔다 온 듯합니다

이걸 영원이라고 불러도 좋을지요

언젠가 저도 저 산등성이를 밀며 가는 구름을 따라 흘러가겠습니다

 

---손택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시선 379, 창비(2014년 9월 15일)---

 

*

 

오늘(2014년 12월 5일, 금요일),

북한산 갔다.

 

그녀에게 행복하게 잘살라고 말할 뻔 했다.

 

저 꼭대기에 바위 하나 놓여 있는데...

바위에 안겨 소원도 말했다.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한번 '날아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슬픔의 날들을 한번 지나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이 내 것일 수 없듯이

내마음 또한 그녀에게 그렇게 비춰지겠지.

 

왜 그럴까, 그녀는?

내 삶처럼 애매모호하다.

누구도 풀 수 없는 그런 수학공식 같은 그녀다.

 

오! 

제발!!!

 

 

 

 

 

 

 

 

 

 

 

 

 

 

나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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