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그림자가 바위를 미는 동안
손택수
구름이 산등성이를 밀고 지나갑니다
번지는 먹구름에 산이 안색을 바꿉니다
오늘은 기다리는 일로만 하루를 온전히 탕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마당에 비질을 하고, 맑게 갠 귀퉁이에
살구나무 그늘이 밑동의 바위를 미는 걸 지켜보렵니다
나무가 밀다 만 바위귀에 툭,
모래알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오후
술렁이는 그림자 따라 바위도 할 말이 많은 표정입니다
바위도 외로우면 금이 가고, 쩌억
저라도 쪼개 마주하고 싶은 것일까요
한때 저는 저 나무둥치에 그리운 이의 이름을 파 넣었지요
지금은 기억에도 없지만
지워지고 지워져서
한잎이 되고, 또 한잎이 되어 돋아나는 당신이 있습니다
이 오랜만의 기다림은 한눈을 잘 팔던 아이를 생각나게 합니다
저물녘 쿨럭이는 슬레이트 지붕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아이
제가 평생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녁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무엇을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림 속에 빠져 있던
그 외로운 아이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리는 일 하나만으로도 참 멀리 갔다 온 듯합니다
이걸 영원이라고 불러도 좋을지요
언젠가 저도 저 산등성이를 밀며 가는 구름을 따라 흘러가겠습니다
---손택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시선 379, 창비(2014년 9월 15일)---
*
오늘(2014년 12월 5일, 금요일),
북한산 갔다.
그녀에게 행복하게 잘살라고 말할 뻔 했다.
저 꼭대기에 바위 하나 놓여 있는데...
바위에 안겨 소원도 말했다.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한번 '날아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슬픔의 날들을 한번 지나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이 내 것일 수 없듯이
내마음 또한 그녀에게 그렇게 비춰지겠지.
왜 그럴까, 그녀는?
내 삶처럼 애매모호하다.
누구도 풀 수 없는 그런 수학공식 같은 그녀다.
오!
제발!!!
나를 용서하소서!!!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응, 엄마의 국자 (0) | 2015.01.13 |
---|---|
이수명, 이 건물에 대하여 (0) | 2015.01.06 |
박형권, 꽃을 먹다 (0) | 2014.12.03 |
이태수, 빈손 (0) | 2014.11.24 |
이규리, 저, 저, 하는 사이에 (0) | 2014.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