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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윤중호, 고향길 外 1

by kimbook 2007. 6. 8.
고향 길1

 

 윤중호(1956-2004)

 

 산딸기가 무리져 익어가는 곳을 알고 있다.

 찔레 새순을 먹던 산길과

 삘기가 지천에 깔린 들길과

 장마 진 뒤에, 아침 햇살처럼, 은피라미떼가 거슬러 오르던 물길을

 알고 있다. 그 길을 알고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넘실넘실 춤추는 꽃상여 타고 가시던

 길, 뒷구리 가는 길, 할아버지 무덤가로 가는 길

 한철이 아저씨가 먼저 돌아간 부인을 지게에 싣고, 타박타박 아무도 모르게 밤길을 되짚어 걸어간 길

 웃말 지나 왜골 퉁정골 지나 당재 너머

 순한 바람 되어 헉헉대며 오르는 길, 그 길을 따라

 송송송송 하얀 들꽃 무리 한 움큼씩 자라는 길, 그 길을 따라

 우리 모두 돌아갈 길

 그 길이 참 아득하다.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님께, 윤중호가 드림.

 

 가을(미완성유고시)

 

 돌아갈 곳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모두 돌아갈 곳으로 돌아간다는 걸

 왜 모르겠어요.

 잠깐만요. 마지막 저

 당재고개를 넘어가는 할머니

 무덤 가는 길만 한 번 더 보구요.

 

 이. 제. 됐. 습. 니. 다.

 

 

 ---윤중호, 고향 길, 문학과지성시인선305, 문학과지성사(2005년 8월 5일)---

 

*'이. 제. 됐. 습. 니. 다.'

그리고, 나도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을까.

'참 아득한 길' 그 위에 우리가 있지만

'많이 기다려달라'고 하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기다린 것'이 많았는데

너무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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