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길1
윤중호(1956-2004)
산딸기가 무리져 익어가는 곳을 알고 있다.
찔레 새순을 먹던 산길과
삘기가 지천에 깔린 들길과
장마 진 뒤에, 아침 햇살처럼, 은피라미떼가 거슬러 오르던 물길을
알고 있다. 그 길을 알고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넘실넘실 춤추는 꽃상여 타고 가시던
길, 뒷구리 가는 길, 할아버지 무덤가로 가는 길
한철이 아저씨가 먼저 돌아간 부인을 지게에 싣고, 타박타박 아무도 모르게 밤길을 되짚어 걸어간 길
웃말 지나 왜골 퉁정골 지나 당재 너머
순한 바람 되어 헉헉대며 오르는 길, 그 길을 따라
송송송송 하얀 들꽃 무리 한 움큼씩 자라는 길, 그 길을 따라
우리 모두 돌아갈 길
그 길이 참 아득하다.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님께, 윤중호가 드림.
가을(미완성유고시)
돌아갈 곳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모두 돌아갈 곳으로 돌아간다는 걸
왜 모르겠어요.
잠깐만요. 마지막 저
당재고개를 넘어가는 할머니
무덤 가는 길만 한 번 더 보구요.
이. 제. 됐. 습. 니. 다.
---윤중호, 고향 길, 문학과지성시인선305, 문학과지성사(2005년 8월 5일)---
*'이. 제. 됐. 습. 니. 다.'
그리고, 나도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을까.
'참 아득한 길' 그 위에 우리가 있지만
'많이 기다려달라'고 하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기다린 것'이 많았는데
너무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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