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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허수경, 폐병장이 내 사내

by kimbook 2007. 6. 15.

폐병장이 내 사내

 

허수경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
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
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
어 주고 싶었네
산 가시내 되어 독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 후 불며 먹이
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칠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 뿐이랴

---허수경,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실천시집57, 실천문학사 (1988넌 11월 30일)---

 

*나도 폐병을 앓은 적이 있다.

 그 '흔적'이 '무슨 일'을 가로 막은 적이 있다.

 원주기독교병원(지금은 연대 부속병원)에서

 연대세브란스병원으로 장소만 옮겨

 내 희망을 좌절시켜 버렸다.

 

 '흔적'이란 그런 것이다.

 끝끝내 잡고서 놓아주지 않는다.

 

 '첫사랑'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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