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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정철훈, 아버지의 등

by kimbook 2007. 7. 14.
아버지의 등

정철훈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넘어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바닥에 쿵, 하고
고목 쓰러지던 소리

숨을 죽이다
한참 만에 나가보았다
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눕힌
아버지의 검은 등짝
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
삼십년이나 지난 어느날
아버지처럼 휘적휘적 귀가한 나 또한
다 큰 자식들에게
내 서러운 등짝을 들키고 말았다

슬며시 홑청이불을 덮어주고 가는
딸년 땜에 일부러 코를 고는데
바로 그 손길로 내가 아버지를 묻고
나 또한 그렇게 묻힐 것이니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서러운 등짝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다


---창작과 비평, 2003 가을호(통권121호), 창작과비평사(2003년 9월 1일)---

---정철훈, 개 같은 신념, (주)문학동네(2004년 10월 10일)---

 

*어머니 운동에 늘 따라나서는 아버지의 등을 본 적이 있다.

 아픈 나를 업고 몇 십리를 다니던 등이다.

 내가 그렇게 볼품없는 아버지의 등을 만들어 드린 것이다.

 오늘도 그 등은 말이 없다.

 

 

*어버지의 노래*

 

2006년 10월 1일 우면산 초록음악회(국립국악원 별맞이터)

*작곡 : 유은선   *노래 : 강호중    *국립국악원창작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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