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위의 노인들
최치언
대부분 마을의 노인들은 그 절벽으로 간다
가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절벽은 항상 그곳에 있다
그 길은 혼자 가야 하는 길이다
아들이 노인을 배웅해서도 안 되고
손자가 같이 가겠다고 졸라서는 더욱 안 된다
노인들은 그날을 예감한다 늙는다는 것은 놓던 주판알을 무릎으로
탁 치고 털어버리는 것이다, 그뿐이다
3일 전부터 마을의 노인들은 서로 일체 만나지도
수다스런 전화질도 하지 않는다
곡기를 끊고 눈과 귀를 막아버린다 그것은 대부분 두려움을
떨치기 위함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아들이 비웃어서는 안 된다
아들도 머지않아 혼자만의 길을 걸어 그 절벽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각자의 길을 선택해 걸어간다 길을 걸으면서
평생 알아왔던 이름들을 부른다 이름 뒤에는 꼭 이런 말을 주석처럼
달아야 한다
오! 이런 개나 물어갈 것들,
늙는다는 것은 버려진 사과와 같은 것이다 증오로
쭈글쭈글해지고 메마른 씨방 속에 베옷 같은 곰팡이나 피우는, 그뿐이다
정오를 지나 태양이 길 위에서 사라지기 전 노인들은
절벽에 모인다
하나 둘씩 걸친 옷들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절벽 위에 선다
노인들은 이쯤에서 기어이 한번쯤 울고 만다
오! 이런 개나 물어갈 인생 같으니, 늙는다는 건 결과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일처럼 귀찮아지는 일이다, 그뿐이다
마지막 노인까지 모였을 때
태양은 절벽 위에 신호등처럼 걸려 있다 그리고 순간 깜박 꺼지는
것이다
이때 노인들은 절벽 밑으로 몸을 던진다
깨진 허공에서 들려오는 저 바람 가르는 소리.
태양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아! 그들은 순간 날개를 옆구리에 달고
새처럼 허공을 날아오른다
늙는다는 건 저 생을 나기 위해 이 생의 잎들을 떨어뜨리고
구부정한 어깨춤에 자신도 모르는 날개를 하나씩 키우는 것이다, 그뿐이다
그래서 나는 새를 보면 우리들은 이 생이 한갓 쓸쓸한 휴양지
같은 것이다.
---최치언,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문예중앙시선 8, 랜덤하우스중앙(2005년 10월 31일)---
*나는
'새를 보면'
내 생은
'한갓 쓸쓸한 휴양지'가
멀리서 보이는
더욱 쓸쓸한 절벽쯤이라 생각한다.
개도 안물어갈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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