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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최치언, 절벽 위의 노인들

by kimbook 2007. 7. 17.

절벽 위의 노인들

 

최치언

 

대부분 마을의 노인들은 그 절벽으로 간다

가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절벽은 항상 그곳에 있다

그 길은 혼자 가야 하는 길이다

아들이 노인을 배웅해서도 안 되고

손자가 같이 가겠다고 졸라서는 더욱 안 된다

노인들은 그날을 예감한다 늙는다는 것은 놓던 주판알을 무릎으로

탁 치고 털어버리는 것이다, 그뿐이다

3일 전부터 마을의 노인들은 서로 일체 만나지도

수다스런 전화질도 하지 않는다

곡기를 끊고 눈과 귀를 막아버린다 그것은 대부분 두려움을

떨치기 위함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아들이 비웃어서는 안 된다

아들도 머지않아 혼자만의 길을 걸어 그 절벽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각자의 길을 선택해 걸어간다 길을 걸으면서

평생 알아왔던 이름들을 부른다 이름 뒤에는 꼭 이런 말을 주석처럼

달아야 한다

오! 이런 개나 물어갈 것들,

늙는다는 것은 버려진 사과와 같은 것이다 증오로

쭈글쭈글해지고 메마른 씨방 속에 베옷 같은 곰팡이나 피우는, 그뿐이다

정오를 지나 태양이 길 위에서 사라지기 전 노인들은

절벽에 모인다

하나 둘씩 걸친 옷들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절벽 위에 선다

노인들은 이쯤에서 기어이 한번쯤 울고 만다

오! 이런 개나 물어갈 인생 같으니, 늙는다는 건 결과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일처럼 귀찮아지는 일이다, 그뿐이다

마지막 노인까지 모였을 때

태양은 절벽 위에 신호등처럼 걸려 있다 그리고 순간 깜박 꺼지는

것이다

이때 노인들은 절벽 밑으로 몸을 던진다

깨진 허공에서 들려오는 저 바람 가르는 소리.

태양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아! 그들은 순간 날개를 옆구리에 달고

새처럼 허공을 날아오른다

늙는다는 건 저 생을 나기 위해 이 생의 잎들을 떨어뜨리고

구부정한 어깨춤에 자신도 모르는 날개를 하나씩 키우는 것이다, 그뿐이다

그래서 나는 새를 보면 우리들은 이 생이 한갓 쓸쓸한 휴양지

같은 것이다.

 

---최치언,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문예중앙시선 8, 랜덤하우스중앙(2005년 10월 31일)---

 

*나는

 '새를 보면'

 내 생은

'한갓 쓸쓸한 휴양지'가

 멀리서 보이는

 더욱 쓸쓸한 절벽쯤이라 생각한다.

 

 개도 안물어갈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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