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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손택수, 풀벌레 울음소리 2

by kimbook 2007. 7. 17.
풀벌레 울음소리 2

손 택수

그 여자는 무릎부근이 성감대였다
무릎 아래 종아리나
그 위를 쓰다듬어주면 금세
상기된 얼굴이 되곤 하였다
둘만의 은밀한 시간
거기에 살짝 손끝이라도 대고 간질여주면
진저리치며,
깜박 넘어가도 좋을 음악 소리를 내곤 하였다
풀벌레들 중 몇몇은 다리로 운다는데
다리 관절 어디에 울음통이 있어
가을밤이 자지러지도록 울어주곤 한다는데
그 여자는 아마도 풀벌레들의 후예인가보았다
그래, 풀벌레들 가늘디가는 다리를 물려받았나보았다
살면서 어디에 무릎 꿇을 일 그리 많았던지
구두코가 다 벗겨지도록
오르내릴 계단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가끔씩 쥐가 나서 주물러주던 다리
장난스레 쓰다듬으면, 끄집어내린 치마 속에 숨어
곱게 눈을 흘기던 그 슬픈 무르팍


---문학동네, 2003년 가을호(통권 36호)---

---손택수, 목련전차, 창비시선264, 창비(2006년 9월 25일, 초판2쇄)---

*'목련전차'에는 '풀벌레 울음소리'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풀벌레 울음소리를 닮은 여자를 안다.

 곱게 눈을 흘기던 슬픈 무르팍을 가진 여자를 안다.

 아주 슬픈 세상을 걷고 있는 한 여자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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