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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김신용, 도장골 시편, 부빈다는 것

by kimbook 2007. 9. 4.

도장골 시편

부빈다는 것

 

김신용

 

 

안개가

나뭇잎에 몸을 부빈다

몸을 부빌 때마다 나뭇잎에는 물방울들이 맺힌다

맺힌 물방울들은 후두둑 후둑 제 무게에 겨운 비 듣는 소리를 낸다

안개는, 자신이 지운 모든 것들에게 그렇게 스며들어

물방울을 맺히게 하고, 맺힌 물방울들은

이슬처럼, 나뭇잎들의 얼굴을 맑게 씻어준다

안개와

나뭇잎이 연주하는, 그 물방울들의 和音,

강아지가

제 어미의 털 속에 얼굴을 부비듯

무게가

무게에게 몸 포개는, 그 불가항력의

표면 장력,

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힐 때마다, 제 몸 풀어 자신을 지우는

안개,

그 안개의 粒子들

 

부빈다는 것

 

이렇게 무게가 무게에게 짐 지우지 않는 것

 

나무의 그늘이 나무에게 등 기대지 않듯이

 

그 그늘이 그림자들을 쉬게 하듯이

 

---김신용, 도장골 시편, 시작시인선0084, 천년의시작(2007년 4월 10일)---

 

*'부빈다는' 이유로

 짐 지우고,

 등 기대고...

 

 '그늘'이 되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속엔

 안개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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