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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박성우, 소금벌레

by kimbook 2007. 9. 8.

소금벌레

 

박성우

 

소금을 파먹고 사는 벌레가 있다

 

머리에 흰털 수북한 벌레 한 마리가

염전 위를 기어간다 몸을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연신 소금물을 일렁인다

 

소금이 모자랄 땐

제 눈물을 말려 먹는다는 소금벌레,

소금물에 고분고분 숨을 죽인 채

짧은 다리 분주하게 움직여

흩어진 소금을 쉬지 않고 끌어모은다

땀샘 밖으로 솟아오른 땀방울이

하얀 소금꽃 터트리며 마른다

 

소금밭이 아닌 길을 걸은 적 없다 일생 동안

소금만 갉아먹다 생을 마감할 소금벌레

 

땡볕에 몸이 녹아내리는 줄도 모르고

흥얼흥얼, 고무래로 소금을 긁어모으는

비금도 대산염전의 늙은 소금벌레여자,

 

짠물에 절여진 세월이 쪼그쪼글하다

 

---박성우, 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창비(2007년 3월 30일)---

 

*벌레가 우리집에도 두마리 있다.

 소금은 아니었지만

 '제 눈물'을 먹고 살았다는 건 분명하다.

 

 '땡볕에 녹아내린'

 벌레의 몸뚱이를 볼때마다

 '쪼글쪼글하게 절여진 세월'처럼 짠하다.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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