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

천수호, 한순간

by kimbook 2009. 7. 2.

한순간

 

천수호

 

어둠을 탁, 놓아 버리면

그 탄력으로 오래 빙글거리다가

서서히 가라앉는 침전물

아파트와 나무와

사람, 이라는 결정체가 드러난다

 

바닥을 내보이는 골목

더는 휘젓지 말아야 한다

빙글빙글 도는 밤의 블랙홀에

다시 빠지지 말아야 한다

 

도시는 단지 희멀게진 윗물

 

새벽하늘 위로

까치 한 마리

번지지 않고 날아오른다

부리 끝에 물고 있는

지푸라기만한 한 햇살이

한순간, 빛살을 터뜨린다

저 놀라운 빛의 번식력

 

---천수호, 아주 붉은 현기증, 민음의 시 153, 민음사(2009년 3월 30일)---

 

 

 

*내 삶도 번지지 않았으면 한 적이 있다.

 

 '한순간' 이다.

 

 生死一如.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재홍, 그 사람은 지금쯤  (0) 2009.07.14
최영미, 나무는 울지 않는다  (0) 2009.07.03
황동규, 11월의 벼랑  (0) 2009.06.15
박라연, 고사목 마을  (0) 2009.06.15
함민복, 사연  (0) 2009.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