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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강연호, 접촉사고

by kimbook 2012. 11. 28.

접촉사고

 

강연호

 

출근길 접촉사고가 났다

충돌도 아니고 추돌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접촉이라는 사고

접촉이라는 말이 에로틱해서 나는 잠시 웃었다

사고라는 말뜻까지 다시 들려서 또 웃었다

 

길에서 만난 개미 두마리

머뭇머뭇 더듬이로 서로의 몸을 더듬다가

아예 한몸으로 엉겨붙다가

겨우 반씩 비켜줘 각기 제 갈 길을 가듯

나는 그저 출근이나 하고 싶었는데

 

상대편 운전자는 잔뜩 인상을 쓰더니

대뜸 웃통부터 벗었다

아니 다짜고짜 길에서 이러면 날더러

얼굴이 홧홧 달아올라

나도 예의상 단추라도 풀어야지 싶었다

 

하지만 대낮에 사거리 한복판이고

사방에 눈이 많았다

때를 놓치면 너무 멀리까지 함께 가야 한다

우선 나부터 식혀놓고 봐야 한다

접촉은 사고가 아니잖아

 

서로의 몸을 더듬다가

머뭇머뭇 제 갈 길을 갔던

그 개미들은 언제 다시 접촉했을까

결국 사고 치고 잘 살았을까

 

---강연호, 창작과비평 2012년 겨울호(통권 158호), 창비(2012년 12월 1일)---

 

*접촉하고 싶다.

 접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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