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안터널
손세실리아
양평에서 강변북로로 빠지다 보면
협궤열차 같은 터널 다섯 개
잇달아 서 있다
살도 뼈도 내장까지도 다 긁어낸
산의 복부를 차례로 관통하면서
누군가에게 길을 터주는 일이란
저토록 말끔히 자신을 비워내는 일임을
잘린 뼈마디 끈적한 진물도 감추고
살아온 날의 흔적마저 가셔내는 일임을
그리하여 마침내
완벽한 육탈보시肉脫布施에 이르는 길임을 본다
한때 숨통이었다가 죽음이기도 했던
까칠한 사람 하나 터널 끝에 서 있다
잠시, 목이 멘다
---손세실리아, 기차를 놓치다, 애지시선 006, 도서출판 애지(2006년 2월 13일)---
*나, 자신을 비워
당신에게
말끔히 길을 터주지 못해
자꾸, 자꾸 목이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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