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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고광근, 작은 못 外 1

by kimbook 2007. 7. 14.

 

 

*작은 못*
 
고광근
 
연장통에 누워 있는
녹슬고 쓸모없던
작은 못 하나
바로 세워 벽에 박았더니
내 키만 한 거울을
든든하게 잡고 있네
 
저렇게
작은 것들도
엄청난 힘이 있구나
누군가가 바로 세워 주기만 하면
 
 
 
*계단 이야기*
 
꼬부랑 할머니가
한 발 한 발 힘겹게 올라서시면
내 몸은
겹겹이 층이 져서 안타까웠어
첫나들이 아가
아장아장 내 등에 꽃신 디딜 때
온몸 간지러워 웃음 웃었지
"아이야, 세상은 이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는 거란다."
누군가 나를 두고 말할 때
나도 누군가의 가르침이 될 수 있다니
하루 종일 등 밟힌 고달픔도 잊었지
하지만 딱 한 번
잊고 싶은 날이 있었어
그 날은 할 수만 있다면
내 온몸을 헐어 버리고 싶었어
아저씨의 담뱃불에
등이 데여서도 아니고
철없는 누나가 뱉은 껌이
내 엉덩이에 달라붙어서도 아니야
훨체어에 탄 소년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 눈망울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슬픈 눈빛 때문이었어
 
 
---고광근, 벌거벗은 아이들, 좋은책두두30, 문원(2006년  11월 10일)---
 
 
*누군가가 나를 바로 세워 주기를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만 있는 것 같아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 눈망울'과
 '가장 슬픈 눈빛'을
 나는 얼마나 많이 외면했던가!
 그래서 나는 한계단도 위로 올라가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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