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상처
문정희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며 저 아래
강이 흐른다고 하지만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다리 아랜 언제나 강이 있었다
너를 사랑해! 한여름 폭양 아래 핀
붉은 꽃들처럼 서로 피눈물 흘렸는데
그 사랑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사랑은 내 심장 속에 있다가
슬며시 사라졌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다리에는
지금 아무 것도 없다
상처가 쑤시어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만
내 상처에 맞는 약 또한 세상에는 없었다
나의 몸은 가을날 범종처럼 무르익어
바람이 조금만 두드려도 은은한 슬픔을 울었다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다리 아랜 여전히 강이 있었다
---문정희, 오라, 거짓 사랑아, 민음의 시 102, 민음사(2001년 9월 22일)---
*강은 보이지 않는다.
가을은 상처가 은은하게 익는 계절이다.
그 가을도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가거라, 거짓 사랑아...
겨울 가면 또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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