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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정낙추, 그 男子의 손

by kimbook 2008. 1. 28.

그 男子의 손

 

정낙추

 

그 남자의 손은

무쇠솥 뚜껑보다 크고 투박합니다

소나무 옹이보다 억센 손마디로

여린 싹도 키우고 고운 꽃도 피우게 하는

요술쟁이 손

그 손바닥엔 딱딱한 못이 박혀 있습니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을 단단한 못 속에는

서러운 세월을 안으로 삭힌

땀과 눈물이 고여 있는걸 아시는지요

 

그 남자의 손에는

잘 썩은 두엄 냄새와 구수한 곡식 냄새가 납니다

비누로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그 냄새는 그 남자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일으켜 세우는 신비한 힘입니다

그 손은 욕심 없는 정직한 손입니다

이 나라 만백성을 먹여 살리고도

생색 한 번 안 낸 위대한 손입니다

 

그 손이 요즘 들어

희고 부드러운 손 앞에서 주눅 들어

자꾸 주머니 속으로 숨습니다

아내의 가슴을 보듬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거친

그 남자의 손이 가엾어 죽겠습니다

 

---정낙추, 그 남자의 손, 애지시선 011, 애지(2007년 4월 12일 초판 2쇄)---

 

*92쪽, '입동 무렵' 아래서부터 5번째 行,

 '박가네 딸내미 대사가 낼인가 모랜가'

 '박가네 딸내미 대사가 낼인가 모렌가'로...

 

 

 *부끄럽다.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보면...

  좋은 시인을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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