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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차창룡, 겨울나무

by kimbook 2011. 3. 23.

겨울나무

 

차창룡

 

단순해지면 강해지는구나

꽃도 버리고 이파리도 버리고 열매도 버리고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벌거숭이로

꽃눈과 잎눈을 꼭 다물면

바람이 날씬한 가지 사이를

그냥 지나가는구나

눈이 이불이어서

남은 바람도 막아 주는구나

머리는 땅에 쳐박고

다리는 하늘로 치켜들고

동상에 걸린 채로

햇살을 고드름으로 만드는

저 확고부동하고 단순한 명상의 자세 앞에

겨울도 마침내 주눅이 들어

겨울도 마침내 희망이구나

 

---차창룡, 벼랑 위의 사랑, 민음의 시 164, 민음사(2010년 4월 22일)---

 

*나는  '그'를  '겨울나무'라 생각했다.

 마음이나 정신의 근육이

 겨울 한가운데 우뚝 솟은 고향 느티나무의 

 단단한 그 '근육'  같았었는데...

 

 만약, '그'가

 리비아 어느 공항에 근무한다면

 활주로 가운데 우뚝 솟아 카다피의 전투기를

 제압할 것만 같은데...

 

 만약, '그'가

 아직도 동인천이나 연안부두 부근에서

 홀로 낮술을 마시며 눈가의 잔주름만 제작하고 있다면...

 

 이쁜 딸들에게 황금잉어빵은 누가 사다 드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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