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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정끝별, 동태눈알

by kimbook 2011. 3. 28.

동태눈알

 

정끝별

 

푹 익은 무와 콩나물과 미더덕에 휘감긴 채

냄비 바닥에 달랑 남은 동태머리 한 토막

 

아버지는 유난히 동태머리를 좋아하셨다

아가미 눈알 그리고 고니라는 이름의 내장도

남편과 아이들은 동태머리를 먹지 않는다

고니는 물론 아가미 눈알은 더더욱

남기려는데, 밀랍처럼 봉인된 저 낯익은 눈빛

내 그릇에 떠와 동태머리를 발라먹는다

쪽쪽 빨아먹는다 아버지처럼

 

얼음처럼 녹는 처음 살맛은 무능처럼 무르다

골육을 휘감던 수압이든 어둠이든

천만 갈래 갈라져서도 숨을 놓지 못하고

쌕쌕 소리를 내던 아버지의 벌린 입

속풀이에 그만이라는

주름진 아가미는 모독처럼 쓰다

 

파도든 해일이든 뜬눈으로 맞으며

핏줄의 피로랄까 연명의 연속이랄까

냉동과 해동을 거듭 견디다 마지막 식탁에서

이젠 안 보여야 셋째아들한테만 귀띔한 채

그리 부릅뜨고 있던 아버지의 먼눈

끝내 입에 넣을 수 없는

 

젓가락이 들어올린 허공을 삼킨 동공

내 혀는 아직 멀었다

 

---정끝별, 문학동네 2011년 봄호(통권 66호), 문학동네(2011년 2월 24일)---

 

*슬프다.

 동태눈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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