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이경임
돌팔매질을 당해봐야 영혼에 파문이 생기는 거죠
강아지를 키우거나 나무와 이야기하거나
꽃을 돌보는 건 쉽죠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 것처럼 그런 것들은 평온해요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처럼
사람을 그리워해봐야 영혼에 파문이 생기는 거죠
사람 때문에 죽고 싶고 사람 때문에 살고 싶어봐야
영혼에 파문이 생기는 거죠
지렁이처럼 땅속을 기어 다녀봐야죠
몽유병 환자처럼 숲 속을 떠돌아다녀봐야죠
뒤집힌 풍뎅이처럼 무덤 속에서 버둥거리다
어둠 속 폭우처럼 울부짖어봐야죠
강가 대나무 잎새들이 휘청거리는 소리와
영안실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어봐야죠
연인의 침묵 속에서 미친 벌 떼처럼 웅웅거리는
신기루를 만져봐야죠
그래야 영혼에 파문이 생기는 거죠
---이경임,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 문학과지성 시인선 398, 문학과지성사(2011년 8월 25일)---
*내 어릴 적,
높이 약 25m에서 떨어진 적 있다.
말 그대로, 垂直落下라고나 할까.
그때, 이마빡과 '마당바위'의 충돌이 있은 후
머리속에 '파문'이 생긴건지,
애가 '띨'하게 되었다.
안성 어디,
물수제비 같이 뜨던 친구는
'호수'에 파문만 남기고 멀리 멀리 떠나갔다.
아, 나는
'영혼'이 뭔지도 모른다.
영혼에 파문이 생기면,
호수가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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