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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이혜미, 측백 그늘

by kimbook 2013. 3. 21.

  측백 그늘

 

  이혜미

 

     너는 해초마냥 나를 휘감았네 내 머리카락도 천 개의 손

  이 되어 너와 얽혀들었지 손가락 사이로 푸른 비늘 출렁이

  는데,  이끼 덮인 너의 몸은  요동치는  한 마리 물고기였네

 

      한 욕조에 든 것처럼 비린 그늘 쏟아졌다  먹먹하게 헐떡

  이는 너의 아가미가 밀려들어오면 바다,  그 물비늘들이 끝

  내  나를 눈멀게 했다   엎질러진 그림자를 황급히 주워담으

  며 자꾸만 늑골 어디쯤이 흥건했는데 아아 네 속에 들어 이

  제는 반만 처녀인 나를 어쩌면 좋을까 눈부신 모습 뒤로 습

  한  그늘을 숨기는  습관은  너에게 배운 것이어서 감당하지

  못할 살만 골라 사랑했던가  수맥의 흐름 속으로 콸콸 흐르

  고 싶은 내가 또 네가 아찔했다  고단한 뿌리를 움찔거리는

  너,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치명(致命)

 

     너의 비릿한 아가미 속에 들던 날, 이제 그만

     나를 모른 체하고 싶었네

 

---이혜미, 보라의 바깥, 창비시선 335, 창비(2011년 9월 26일)---

 

  *'감당하지 못할 살'을

    나는 감당할 수가 없다.

 

   아마,

   高선배는 감당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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