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 그늘
이혜미
너는 해초마냥 나를 휘감았네 내 머리카락도 천 개의 손
이 되어 너와 얽혀들었지 손가락 사이로 푸른 비늘 출렁이
는데, 이끼 덮인 너의 몸은 요동치는 한 마리 물고기였네
한 욕조에 든 것처럼 비린 그늘 쏟아졌다 먹먹하게 헐떡
이는 너의 아가미가 밀려들어오면 바다, 그 물비늘들이 끝
내 나를 눈멀게 했다 엎질러진 그림자를 황급히 주워담으
며 자꾸만 늑골 어디쯤이 흥건했는데 아아 네 속에 들어 이
제는 반만 처녀인 나를 어쩌면 좋을까 눈부신 모습 뒤로 습
한 그늘을 숨기는 습관은 너에게 배운 것이어서 감당하지
못할 살만 골라 사랑했던가 수맥의 흐름 속으로 콸콸 흐르
고 싶은 내가 또 네가 아찔했다 고단한 뿌리를 움찔거리는
너,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치명(致命)
너의 비릿한 아가미 속에 들던 날, 이제 그만
나를 모른 체하고 싶었네
---이혜미, 보라의 바깥, 창비시선 335, 창비(2011년 9월 26일)---
*'감당하지 못할 살'을
나는 감당할 수가 없다.
아마,
高선배는 감당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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