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벚나무 아래서
이현호
사랑, 끝까지 가보는 것, 그 끝에서 나를 만나는 것, 나는
개입니다 쉬쉬하는 얘기입니다만 곧 짓뭉개질 벚꽃들 솟수무책 달보
다 환한 밤이면 고백이 그립습니다 차마
고백이라니
마치 나는 나를 안다는 듯
고백의 순간 네 얼굴은 미묘하게 일그러지고 영원에서 찰나로 빨강에
서 핏빛으로 그림자는 깊어지고 벚꽃처럼 징그럽게 결백한 손끝들 만발
하고 마음은 마음을 조리돌리고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은 새 옷을 도둑맞은 표정으로
차라리
말 못하는 짐승의 목을 조르겠습니다 고백은 칼집을 떠난 칼날이니 너
를 찌르겠습니다 네 마음은 알겠어 꺼지라는 건지 죽어버리라는 건지 말
해주지 않는 용기 앞에서
고백은 살고 싶은 마음
목매달면 하르르, 공중을 빗질한 듯 벚꽃은 흐드러지겠네
혼자 하는 캐치볼
고백은
뱉고 나면 밑창에 짓밟히는 벚꽃
고해성사 하는 신을 믿기로 하는 밤
창문을 열고 자위하는 사람
인권은 고백에서 나옵니까, 참을 수 없는 건 네가 아닌 나에 대한 것이
므로, 나는
개라니까, 스스로 던진 고백을 쫓아 혀를 빼물고 네 마음밭 위를 뛰어
가는 미친
벚나무들은 내년 봄에도 말간 눈알 같이 아름답겠지요
---이현호, 작가세계 2015 여름호(105호), 작가세계(2015년 5월 30일)---
*그래,
우리도 개벚나무아래에서 술 한잔 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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