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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이현호, 개벚나무 아래서

by kimbook 2015. 9. 10.

   개벚나무 아래서

 

   이현호

 

   사랑, 끝까지 가보는 것, 그 끝에서 나를 만나는 것, 나는

  

   개입니다 쉬쉬하는 얘기입니다만 곧 짓뭉개질 벚꽃들 솟수무책 달보

다 환한 밤이면 고백이 그립습니다 차마

 

   고백이라니

   마치 나는 나를 안다는 듯

 

   고백의 순간 네 얼굴은 미묘하게 일그러지고 영원에서 찰나로 빨강에

서 핏빛으로 그림자는 깊어지고 벚꽃처럼 징그럽게 결백한 손끝들 만발

하고 마음은 마음을 조리돌리고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은 새 옷을 도둑맞은 표정으로

   차라리

 

   말 못하는 짐승의 목을 조르겠습니다 고백은 칼집을 떠난 칼날이니 너

를 찌르겠습니다 네 마음은 알겠어 꺼지라는 건지 죽어버리라는 건지 말

해주지 않는 용기 앞에서

 

   고백은 살고 싶은 마음

   목매달면 하르르, 공중을 빗질한 듯 벚꽃은 흐드러지겠네

 

   혼자 하는 캐치볼

   고백은

   뱉고 나면 밑창에 짓밟히는 벚꽃

   고해성사 하는 신을 믿기로 하는 밤

   창문을 열고 자위하는 사람

 

   인권은 고백에서 나옵니까, 참을 수 없는 건 네가 아닌 나에 대한 것이

므로, 나는

 

   개라니까, 스스로 던진 고백을 쫓아 혀를 빼물고 네 마음밭 위를 뛰어

가는 미친

 

   벚나무들은 내년 봄에도 말간 눈알 같이 아름답겠지요

 

---이현호, 작가세계 2015 여름호(105호), 작가세계(2015년 5월 30일)---

 

*그래,

 우리도 개벚나무아래에서 술 한잔 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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