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걷는다
이병승
배운 게 없어서 놀 줄도 모르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고급 취미는 남의 나라 얘기인 어머니에게도
한 가지 놀이가 있다면
그건, 걷는 거다
건강을 위해 걷는 줄 알았는데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걷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바람처럼 걸으며 소녀처럼 웃는
어머니의 경쾌한 발걸음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도
몰라,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거지, 라는 대답밖엔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납작 신발 아래에
하얀 뭉게구름이 있고, 초원이 있었다
춤 같은 웃음이
신발 끝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병승,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실천시선 221, 실천문학사(2014년 8월 7일)---
*어머니의 발걸음이 참 가볍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어머니의 납작 신발 아래에
하얀 뭉게구름이 있고, 초원이 있'다 라고도
이야기 하고 싶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미영, 구메구메 (0) | 2016.02.25 |
---|---|
강우식, 달 (0) | 2016.02.04 |
이현호, 개벚나무 아래서 (0) | 2015.09.10 |
이현승, 인정도 사정도 없이, 현대문학(2014년 11월 26일) (0) | 2015.08.30 |
윤제림, 수몰(水沒) (0) | 2015.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