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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이장욱,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by kimbook 2007. 6. 9.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이 장욱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서로 다른 가을을 보내고

서로 다른 아프리카를 생각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드디어 외로운 노후를 맞고

드디어 이유없이 가난해지고

드디어 사소한 운명을 수긍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었다

그가 결연히 뒤돌아서자

그녀는 우연히 같은 리듬으로 춤을

그리고 당신은 생각나지 않는 음악을 찾아 바다로

 

우리는 마침내 서로 다른 황혼이 되어

서로 다른 계절에 돌아왔다

무엇이든 생각하지 않으면 물이 돼버려

그는 零下의 자세로 정지하고

그녀는 간절히 기도를 시작하고

당신은 그저 뒤를 돌아보겠지만

 

성탄절에는 뜨거운 여름이 끝날 거야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어

여전히 사랑을 했다

외롭고 달콤하고 또 긴 사랑을

 

---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지성 시인선 315, 문학과지성사(06년 4월 13일)---

 

*나도 '사소한 운명'을 수긍하기로 했다.

뒤를 돌아보아도 기도하는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人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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