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막 3
유강희
오리막을 도망쳐나온
두 마리의 오리가 오성 저수지에 산다
저수지 윗마을에 사는 할아버지가
그 오리의 주인이란 걸
이곳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누런 짚동이처럼 몇 가구만 남은 마을
저수지가 생기기 전 논이고 밭이었을
지금은 가을, 바짝 마른 물 위로
빈 감나무와 삐죽삐죽 가지를 뻗은 뽕나무가
세상에 무슨 일 있나, 머리를 쳐들고 있다
제 배꼽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집을 나온 두 마리의 오리,
낚시꾼들이 방심한 틈을 타
물통 속의 미끼로 쓸 미꾸라지도 뒤져 먹고
부대 안 고기 밑밥도 헤적거려
꽥꽥 꽉꽉 고픈 배를 채운다
뒤늦게 눈치챈 낚시꾼들이 막대기를 들고
씩씩 숨 헐떡이며 달려오지만
오리는 댑대로 뽀족 나온 궁둥이까지
띠똥 뙤똥 흔들며 나 잡아봐라, 물 속으로 달아난다
낚시꾼은 저수지를 향해 크게 웃기만 하고
더는 오리를 쫓지 않는다
저수지 가를 돌며 낚기꾼들이 남긴
라면 부스러기와 음식 찌끼를 주워먹는
세상이 다 아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지만
그래도 사이좋은 두 마리의 오리는
이 넓디넓은 저수지를 다 가졌다
졸리면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건너편 절벽 밑에 가서 잠을 자고
심심하면 물 속에 고개를 처박고
지나가는 어린 물고기들을 놀래킨다
맘껏 바람을 안아 활개짓도 해보고
부리 끝으로 눈 시린 햇볕을 몰고 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오리막의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더이상 자신들을 찾지 않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꾸우꾸우 하는 목소리를 기억한다
노랗고 둥근 달이 저수지 위에 가득한 밤
물 속 죽은 감나무 가지 끝으로 기어올라간
두 마리 오리는 두고 온 집을 그리며 목메게 운다
---유강희, 오리막, 문학동네(2005년 12월 16일)---
*아직도 '오리들'은
오리막의 '할아버지' '가끔'은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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