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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전성호, 12월 우포늪에서

by kimbook 2007. 6. 9.

12월, 우포늪에서

 

전성호

 

얼음빛에 고방오리들이 귀엽다

눈 감아 귀 열면

보이지 않던 철새들의 또다른 행로가 보인다

날개 가진 것들은 쇠잔한 몸 의지하며

종착지에 다다르고 서쪽 하늘

가물가물 떠나는 자들 누구인가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도

삶의 일부분인가

먼 산과 구름이 얼어붙은 늪가에서

소주 한잔 쭉 들이켜면

가슴 갈피마다 타올랐던 불꽃 새삼스럽다

역광의 물오리 한마리

햇살을 차며

얼음판에 미끄러지는 발걸음이 뜨겁다

산다는 건 저렇게 휴식조차 잊은 물그림자 밖

가벼운 발걸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언 우포가 자신을 끌어당길 때

제 몸이 쓰린 것처럼

모든 길 걸어온 내 뒷모습은 구름에 실려

산그늘과 함께 수면을 건너간다

저물어오는 둑가

꽃대도 구름도 엇누울 무렵

늪은 새를 품고 저녁은 나를 돌려보낸다

 

---전성호,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창비시선 263, 창비(2006년 5월 5일)---

 

*'떠나는 것'도

 '잊어야하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저녁이 나를 돌려보내도'

 나는

 늪 같은 그녀의 마음 가운데

 두 발목이 얼어붙도록

 떠나지 말아어야 했는데...

 

 '서쪽 하늘'로 날아오르는

 오리가족이 너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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