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우포늪에서
전성호
얼음빛에 고방오리들이 귀엽다
눈 감아 귀 열면
보이지 않던 철새들의 또다른 행로가 보인다
날개 가진 것들은 쇠잔한 몸 의지하며
종착지에 다다르고 서쪽 하늘
가물가물 떠나는 자들 누구인가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도
삶의 일부분인가
먼 산과 구름이 얼어붙은 늪가에서
소주 한잔 쭉 들이켜면
가슴 갈피마다 타올랐던 불꽃 새삼스럽다
역광의 물오리 한마리
햇살을 차며
얼음판에 미끄러지는 발걸음이 뜨겁다
산다는 건 저렇게 휴식조차 잊은 물그림자 밖
가벼운 발걸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언 우포가 자신을 끌어당길 때
제 몸이 쓰린 것처럼
모든 길 걸어온 내 뒷모습은 구름에 실려
산그늘과 함께 수면을 건너간다
저물어오는 둑가
꽃대도 구름도 엇누울 무렵
늪은 새를 품고 저녁은 나를 돌려보낸다
---전성호,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창비시선 263, 창비(2006년 5월 5일)---
*'떠나는 것'도
'잊어야하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저녁이 나를 돌려보내도'
나는
늪 같은 그녀의 마음 가운데
두 발목이 얼어붙도록
떠나지 말아어야 했는데...
'서쪽 하늘'로 날아오르는
오리가족이 너무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