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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박라연, 들키다

by kimbook 2007. 6. 9.

들키다

 

박라연

 

철새 도래지에서

살얼음 걷듯 걸어갔는데

그저 눈빛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거처를

밥을 버리고 사라져버린다

행복한 공양 시간을

폭격한 저격수가 된 것이다

천지가 빽빽한 이별이 진공이 되어

온몸을 휘감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백성처럼 많은 새들 중(中) 한 마리에게

꽁꽁 언 인연 하나 모이처럼 던져주면

새의 따뜻한 입속에서 녹아내리기를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아픈 인연 하나 모이처럼 던져주면

그 인연 품고 날아오르기를

주문처럼 외고 또 외는데

평생을 떠돌다

생(生)을 마감하는 철새들에게

인연은 너무 큰 부채라는 듯

난감한 듯

날아가 오지 않는다

 

---박라연, 우주 돌아가셨다, 문예중앙시선 14, 랜덤하우스중앙(2006년 6월 1일)---

 

*솔직히 말하자면

 한 1분 동안만

 손을 꼭 잡고 있었으면 했는데...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 10분 동안만

 손을 꼭 잡고 있었으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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