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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안주철, 개를 사랑함

by kimbook 2007. 8. 11.

 

개를 사랑함

안주철

개를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저 개, 보송보송한
눈을 보고 있으면
헐떡거리면서 밥을 같이 먹고 싶은
산책을 하면서
몇 방울의 오줌으로
주인의 산책로를 표시하는
때로 한 덩어리의 똥을 누는

다음 날
같은 길을 산책하면서
누군가 밟고 지나간 똥을 바라보는
주인과 함께 웃으며
얼굴을 비벼대는
그런 개

퇴근 시간에 맞추어
문 앞에서 꼬리를 꽃처럼 치켜들고
지친 주인을 맞이하는
주인의 손과 발을 아프지 않게
물 줄 아는

내 집사람도
내 딸아이도
내 친구들도 사랑하는
개를 사랑하는 자신도 사랑하게 만드는

개를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개를,
한없이 귀여운
시력이 눈가에 촉촉하게 젖어 있는

하지만 개를 사랑하지 않고
또 누구를 사랑하겠는가

---현대문학, 2004년 3월호(591)---

 

*개박사 후배가 있다.

 진돗개 몇마리를 기르는데

 이곳저곳 개모임에 열심적으로 참여하여

 몇번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개박사가 아닌 후배도 있다.

 이 후배는

 살아있는 개는 싫어하고

 죽어있는(사실은 익혀져 있는) 개만 좋아한다.

 

 개박사네

 앞집이 개고기집이다.

 이 집이 개고기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여,

 입 들이밀 자리조차 늘 부족하다.

 나도 이집에서 몇번

 개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뒤통수를 확 까버리고 싶은

 '개새끼'가

 가끔씩 출몰하는 이 세상에서

 '사랑'만으로는 부족한 것,

 그것이 늘 있다는 게 서글프다.

 

**사진 속 개님은 위 詩와 관계 있을 지 모르나, 이것(* ) 아래글과는 관계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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