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욕조
강기원
가슴뿐이다
가슴이 텅 빈 내가 누워 있다
출렁거림도 없이 출렁이며
널 담아 가득 찼던
더없이 뿌듯했던 가슴이
이제 홀로 누워 잇다
혼곤한 꿈인 듯
내 안에 잠시 머물던 네가
망상을 떨쳐 버리듯
서슴없이 날 빠져나갈 때
무엇으로 널 다시 주저않힐 수 있었겠나
내 안의 열기는 식어 가고
주글주글해진 네 영혼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너
묵은 때 벗기듯 슬슬 지워 낼 것이다
따뜻했던 물의 기억을
내가 내게서 조금씩 빠져나간다
검은 배꼽 비틀어
나는 나를 소진시킨다
흉곽에 남은 너의 흔적
닦을 생각도 없이
내 안의 마지막 물 한 방울
사라지며 지르는 눌린 비명 소리
홀로 듣는 밤이다
너의 형상대로 움푹 들어간 채
텅 비어 버린 내가
---강기원,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민음의 시 162, 민음사(2010년 2월 26일)---
*홀로 남은 밤은,
홀로 남은 밤의 모든 것은 '비명 소리'다.
오늘도 누군가, 너의
'비명 소리'를 심각하게 듣고 있을 지도 모른다.
홀로 있는 가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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