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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강기원, 밤의 욕조

by kimbook 2010. 11. 14.

밤의 욕조

 

강기원

 

가슴뿐이다

가슴이 텅 빈 내가 누워 있다

출렁거림도 없이 출렁이며

널 담아 가득 찼던

더없이 뿌듯했던 가슴이

이제 홀로 누워 잇다

혼곤한 꿈인 듯

내 안에 잠시 머물던 네가

망상을 떨쳐 버리듯

서슴없이 날 빠져나갈 때

무엇으로 널 다시 주저않힐 수 있었겠나

내 안의 열기는 식어 가고

주글주글해진 네 영혼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너

묵은 때 벗기듯 슬슬 지워 낼 것이다

따뜻했던 물의 기억을

내가 내게서 조금씩 빠져나간다

검은 배꼽 비틀어

나는 나를 소진시킨다

흉곽에 남은 너의 흔적

닦을 생각도 없이

내 안의 마지막 물 한 방울

사라지며 지르는 눌린 비명 소리

홀로 듣는 밤이다

너의 형상대로 움푹 들어간 채

텅 비어 버린 내가

 

---강기원,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민음의 시 162, 민음사(2010년 2월 26일)---

 

*홀로 남은 밤은,

 홀로 남은 밤의 모든 것은 '비명 소리'다.

 

 오늘도 누군가, 너의

 '비명 소리'를 심각하게 듣고 있을 지도 모른다.

 

 홀로 있는 가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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