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둔
윤재철
살둔에서 놓고 온
똥이 미안하다
급했지 급했어
그 아름답고 맑은 시냇가에서
똥을 놓고 싶진 않았지
밝은 가을 햇살 아래
엉덩이를 까고
건너편 절벽엔
물그림자 홀로그램 너울너울
그 천년 시원한 바람과
햇빛 그리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던
정선 아라리
비가 오려나 눈이 어려나
억수 장마 지려나
그래도 미안해
가래나무 잎으로 살짝 덮고 온
그 똥
---윤재철, 살둔, 녹색평론 2010년 11-12월호(통권 제115호), 녹색평론사(2010년 11월 3일)---
*"금방 싸놓은 똥은 따스했고 부드러웠어. 씹지 않아도 저절
로 넘어갔어.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을 때처럼 말이
야. 나는 똥 무더기 속에 주둥이를 들이박고 혓바닥으로 찍어
서 넘겼어. 똥의 양이 많지 않아서 안타까웠지. 서너 번 삼키
니까 똥은 다 없어졌어. 다 먹고 나서 마루 틈새로 흘러든 똥
까지 싹싹 핥아먹고, 혀를 길게 빼내서 입 언저리며 콧잔등
위에 묻은 똥까지 싹싹 핥아먹었지."
---김훈,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개, 푸른숲(2005년 7월 11일) 中에서
침을 꼴깍 삼키면서 읽었던 소설의 한 부분이다.
어느 절에는 千年을 落下하는 똥도 있다는데...
'똥들'아,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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