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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윤재철, 살둔

by kimbook 2010. 11. 27.

살둔

 

윤재철

 

살둔에서 놓고 온

똥이 미안하다

 

급했지 급했어

그 아름답고 맑은 시냇가에서

똥을 놓고 싶진 않았지

밝은 가을 햇살 아래

엉덩이를 까고

건너편 절벽엔

물그림자 홀로그램 너울너울

그 천년 시원한 바람과

햇빛 그리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던

정선 아라리

비가 오려나 눈이 어려나

억수 장마 지려나

 

그래도 미안해

가래나무 잎으로 살짝 덮고 온

그 똥

 

---윤재철, 살둔, 녹색평론 2010년 11-12월호(통권 제115호), 녹색평론사(2010년 11월 3일)---

 

*"금방 싸놓은 똥은 따스했고 부드러웠어. 씹지 않아도 저절

로 넘어갔어.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을 때처럼 말이

야. 나는 똥 무더기 속에 주둥이를 들이박고 혓바닥으로 찍어

서 넘겼어. 똥의 양이 많지 않아서 안타까웠지. 서너 번 삼키

니까 똥은 다 없어졌어. 다 먹고 나서 마루 틈새로 흘러든 똥

까지 싹싹 핥아먹고, 혀를 길게 빼내서 입 언저리며  콧잔등

위에 묻은 똥까지 싹싹 핥아먹었지."

---김훈,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개, 푸른숲(2005년 7월 11일) 中에서

 

침을 꼴깍 삼키면서 읽었던 소설의 한 부분이다.

 

어느 절에는 千年을 落下하는 똥도 있다는데...

 

'똥들'아,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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