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솎으며
배한봉
열매를 솎아보면 알지
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 처음엔
열매 많이 다는 것이 그저 좋은 것인 줄 알고
아니, 그 주렁주렁 열린 열매 아까워
제대로 솎지 못했다네
한 해 실농失農하고서야 솎는 일이
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정이란 걸 알았네
삶도, 사랑도 첫 마음 잘 솎아야
좋은 열매 얻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네
나무는 제 살점 떼어내는 일이니 아파하겠지만
굵게 잘 자라라고
부모님 같은 손길로 열매를 솎는 오월 아침
세상살이 내 마음 솎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알았네
*69쪽, 둘째줄, '예취기'는 '예초기',
80쪽 중간, '<玄玄基經>은 '<玄玄棋(碁)經>'
---제26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배한봉 외, 복사꽃 아래 천년, 문학사상사(2011년 8월 25일)---
*'삶도, 사랑도 첫 마음 잘 솎아야
좋은 열매 얻는다는 걸',
'세상살이 내 마음 솎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
나는 아직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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