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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유희경, 궤적

by kimbook 2012. 2. 2.

  궤적

 

  유희경

 

  나와 다른 한  명이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대

 한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금도 꾸미지 않고 천

 천히  분리되며. 그래 구름이. 멀리에도 구름이 있었

 다. 두 명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구름을 보았다.

 

  구름들은  천천히,  그리고  천천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속도. 저쪽으로. 그냥

 저쪽으로 미끄러졌다.  두 명은 각각 무슨 말을 했는

 데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구름은. 그냥 보이는

 것이고.  그저 나는 풀썩,  구름 위에 앉고 싶어 하는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자꾸

 풀썩, 풀썩, 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밤이 왔다.  나와 다른 한 명은 더 이상 나무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 구름은 조금만 보였다. 나는 그것

 도 좋았다.  다른 한 사람은 어땠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유희경, 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문학과지성사(2011년 7월 11일, 초판 3쇄)---

 

*밤은 왔다.

 

 구름은 갔다.

 

 다른 한 사람은 궤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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