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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성미정, 거기에 흰 털이 났습니다

by kimbook 2012. 4. 2.

거기에 흰 털이 났습니다

 

성미정

 

큰일이 났습니다 처음 흰 털을 발견했을 땐

정말이지 화들짝 놀랐더랬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의 기분이

이해됐습니다 그녀는 거기 난 흰 털을

염색하려다 빨간 털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었지요 그걸 보곤 배꼽 잡고 웃었는데

내 일이 돼버리니 남편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게 됐습니다 한동안은

머리에 듬성듬성 흰 털 난 사람만 보면

묻고 싶어졌습니다 저기요 혹시

거기도 거기에 흰 털이 났나요

이미 거기가 흰 털로 뒤덮인 분들이 들으면

흰 털이면 어떻고 빨간 털이면 대수냐

흰 털이나마 소복이 덮여 있으면 따숩고

고마운 줄 알거라 머리털 빠지듯 그 털도

죄 빠지고 맨송맨송 민둥산 되고 나면

허 참 그 얼마나 허전 시린 일인 줄 아는가

그깟 흰 털 세 가닥 가지고 흰소리 치지 마라

호통칠 일이겠지만 무시로 거기에 흰 털이

더 늘었나 그대로인가 확인하고 싶어지고

은근히 거기 난 흰 털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저는 아직도 거기의 흰 털에는 이렇게

아리송한 초짜라서 흰 털 세 가닥 값도

못하고 이렇게 흰 털 타령이 늘어집니다

 

---성미정,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문학동네 시인선 008, 문학동네(2011년 8월 8일)---

 

*친구가 그러던데요.

 그 친구의 친구가

 어느 날 보니,

 자기 마누라 거기에 흰 털이 있더라나요.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의 친구가 말하길

  일종의 사찰이지 뭐, 라고 하더라나요)

  그래서,

  그 친구의 친구가

  자기 마누라에게 곧바로 신고하니까

  그 친구의 친구 마누라는

  콧구녕이 72% 정도 막힌 목소리로,

   "뽀바죠" 라고 하더랍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친구 마누라 이야기인지

   친구의 친구 마누라 이야기인지

   친구의 애인 이야기인지

   친구의 친구 애인 이야기인지

   …………

   …………

   사실인지 아닌지를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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