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흰 털이 났습니다
성미정
큰일이 났습니다 처음 흰 털을 발견했을 땐
정말이지 화들짝 놀랐더랬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의 기분이
이해됐습니다 그녀는 거기 난 흰 털을
염색하려다 빨간 털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었지요 그걸 보곤 배꼽 잡고 웃었는데
내 일이 돼버리니 남편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게 됐습니다 한동안은
머리에 듬성듬성 흰 털 난 사람만 보면
묻고 싶어졌습니다 저기요 혹시
거기도 거기에 흰 털이 났나요
이미 거기가 흰 털로 뒤덮인 분들이 들으면
흰 털이면 어떻고 빨간 털이면 대수냐
흰 털이나마 소복이 덮여 있으면 따숩고
고마운 줄 알거라 머리털 빠지듯 그 털도
죄 빠지고 맨송맨송 민둥산 되고 나면
허 참 그 얼마나 허전 시린 일인 줄 아는가
그깟 흰 털 세 가닥 가지고 흰소리 치지 마라
호통칠 일이겠지만 무시로 거기에 흰 털이
더 늘었나 그대로인가 확인하고 싶어지고
은근히 거기 난 흰 털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저는 아직도 거기의 흰 털에는 이렇게
아리송한 초짜라서 흰 털 세 가닥 값도
못하고 이렇게 흰 털 타령이 늘어집니다
---성미정,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문학동네 시인선 008, 문학동네(2011년 8월 8일)---
*친구가 그러던데요.
그 친구의 친구가
어느 날 보니,
자기 마누라 거기에 흰 털이 있더라나요.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의 친구가 말하길
일종의 사찰이지 뭐, 라고 하더라나요)
그래서,
그 친구의 친구가
자기 마누라에게 곧바로 신고하니까
그 친구의 친구 마누라는
콧구녕이 72% 정도 막힌 목소리로,
"뽀바죠" 라고 하더랍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친구 마누라 이야기인지
친구의 친구 마누라 이야기인지
친구의 애인 이야기인지
친구의 친구 애인 이야기인지
…………
…………
사실인지 아닌지를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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